제로투백: 첫 100명 사용자가 알려준 진짜 서비스 기획법
- 그팀장
- 8월 25일
- 5분 분량
💡이 블로그는 디지오션 에디터의 관점과 경험을 담아 직접 작성한 글이에요. 편집/퇴고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생성 AI의 도움을 받았어요!
한눈에 보는 핵심요약
딜라이팅 AI 론칭 후, 첫 100명의 사용자를 만났습니다. 사용자들이 제 서비스 기획 의도와는 다르게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사용자의 ‘말’보다 ‘행동’에 집중하고, 행동 설계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이번 글에서는 ‘목표’는 고수하되 ‘수단’을 조정하며 제품을 개선해 온 과정과 배운점을 공유해볼게요.
오피스 건물 중앙에 넓은 계단을 설계했습니다. 건축가의 의도는 명확했습니다.
"층과 층을 오가는 길".
6개월 뒤, 건축가가 다시 건물을 찾았을 때 이 계단은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먹는 직장인들, 프로젝트 회의를 하는 팀, 팀원과의 1:1 면담까지. 어느새 ‘비공식 회의실’이 되어 있었죠.

제품을 만드는 빌더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기능을 설계하지만, 사용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품을 쓰죠. 캠페인을 설계하는 마케터도 다르지 않습니다. 잠재고객이 우리가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기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늘 예상과 달라요.
결국 우리는 모두 ‘행동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의도를 설계하고, 결과를 관찰하며, 그 간극을 좁혀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저 역시 '딜라이팅 AI'를 만들며 이를 절실히 경험했습니다.
지난 18주 동안 100명 이상의 사용자를 만나며, 이 간극을 어떻게 제품 개선의 기회로 바꿀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인사이트를 공유해 볼게요.
🎲 첫 100명에게서 발견한 3가지 패턴
건축가의 예시처럼 저 역시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딜라이팅 AI의 기능을 설계했어요.
하지만, 출시 후 100명의 사용자가 실제 보여준 행동은 제 예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크게 세 가지의 간극을 발견했어요.
1️⃣ 외면받은 1000자 글쓰기 모드
딜라이팅 AI는 매일 달라지는 주제에 맞춰 5분 안에 빠르게 쓰는 ‘300자 모드’와, 주 1회 한 주제로 깊이 있게 쓰는 ‘1000자 모드’를 제공해요.
1,000자 모드에는 더 많은 보상(황금열쇠)을 걸어 동기를 부여하려 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용자가 300자 모드만 이용했고, 1000자 모드의 참여율은 눈에 띄게 저조했어요. 원인에 대해 몇가지의 가설을 세워봤어요.
진입 장벽: 긴 글 작성은 부담이 크고, 완성까지 한 번에 몰입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음
보상 체감 부족: 황금열쇠의 가치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아 노력 대비 매력이 떨어짐
루틴 불일치: 300자는 매일 참여로 습관화되지만, 1000자는 주 1회라 몰입이 어려움
주제: 개인 관심사와 맞지 않는 주제일 경우, 긴 글 작성 동기가 급감
💬실제 사용자 피드백:
“300자는 괜찮았지만, 1000자는 부담스러웠어요.”
“글감을 보고 바로 떠오르지 않으면 창을 닫아요. 깊이 생각해야 하는 주제는 오히려 1000자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주제보다 자유 주제로 쓰고 싶었습니다.”

이 피드백을 바탕으로 300자 모드의 최대 분량을 500자로 늘려 ‘짧지만 조금 더 깊게 쓸 수 있는’ 옵션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1,000자 모드에는 주중에는 가이드 주제를 유지하되, 주말에는 자유 주제를 도입했죠.
이렇게 수정한 후, 1000자에 참여하는 사용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어요.
2️⃣ 역할을 잃어버린 황금열쇠
‘황금열쇠’는 다른 사람 글에 피드백 3개를 남기지 못했을 때, 내 글에 달린 피드백 잠금을 해제하는 아이템이에요.
의도는 피드백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황금열쇠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쌓아두는 사용자가 많았어요.

필요성 부족: 대부분 매일 피드백 미션을 완료해 황금열쇠를 쓸 일이 거의 없음
가치 인식 미흡: 황금열쇠 사용 시 얻는 이점이 명확히 느껴지지 않음
대안 부재: 열쇠를 사용할 수 있는 용도가 한정되어 있어 활용도가 낮음
💬실제 사용자 피드백:
“열쇠/보상 등 게임 요소가 자극이 되긴 했지만, 쓸 일이 많이 없었어요.”
“황금열쇠 사용처가 더 다양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황금열쇠를 사용하여 열람할 수 있는 '딜라이팅 AI 버전'을 추가했어요. 내가 쓴 글에 대해 받은 AI 피드백을 적용한 개선 버전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외에도 황금열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사용처를 확장하는 방법들을 고민 중입니다.
3️⃣ 감상에 머무른 피드백
초기에는 글 하단에 단일 피드백 입력창만 제공했어요. 글의 퀄리티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요. 실제로는 ‘좋아요’, ‘공감돼요’ 같은 감상 위주의 댓글이 대부분이었어요.
구조 부재: 피드백 가이드나 항목 구분이 없어, 최소 노력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강함
심리적 부담: 부정적이거나 구체적인 개선점을 쓰는 것을 부담스러워함
관여도 차이: 피드백 작성자가 글을 깊이 읽지 않은 상태에서 남기는 경우 많음
💬 실제 사용자 피드백:
“글쓰기에 대한 피드백보다는 내용에 대한 공감이 주를 이뤘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평가하는 게 부담스러워요.”
“차라리 ‘내용이 좋았어요’ / ‘표현이 좋아요’ 같은 투표형 피드백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였던 피드백 창을 ‘좋았던 점’, ‘개선점’, ‘감상평’ 세 구역으로 구분했어요. 그리고 개선점 대신 ‘더 좋은 글을 위한 제안’이란 표현으로 바꾸고, 피드백 가이드도 함께 제공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로 더 좋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점'을 공유하는 사용자가 많지는 않은데요.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가지 실험을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3가지 사례 모두 설계 의도와 실제 사용 사이의 간극이 왜 발생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이제, 그 이유를 행동 설계 관점에서 살펴볼게요.
😯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딜라이팅 AI의 사례들은 단순히 기능의 문제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사용자의 행동 설계(Behavioral Design) 관점에서 접근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였죠. 스탠퍼드 행동 설계 연구소 설립자 BJ 포그 박사는 행동이 일어나려면 동기, 능력, 계기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동기(Motivation):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
능력(Ability): 행동을 얼마나 쉽게 할 수 있는지
계기(Prompt): 행동을 유발하는 자극
저희의 사례 역시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딜라이팅 AI의 사례를 이 모델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어요.
1000자 모드: 높은 동기(보상)를 제시했지만, 긴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능력 부족)이 행동을 방해함
황금열쇠: 황금열쇠를 쌓아두기만 했던 사용자들은 '피드백 미션 완료'라는 다른 행동을 통해 이미 보상을 얻고 있었으므로, 황금열쇠를 사용할 '계기'가 사라짐
피드백 UI: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하나의 입력창만 제공했을 때, 사용자들은 '무엇을 써야 할까'라는 고민의 과정(능력)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으로 반응함

이처럼 사람들은 각자만의 '사용 논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즉, 즉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장기적인 가치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하고, 진입 장벽이 낮을수록 참여 가능성은 높아져요. 또한, 구조가 모호하면 사용자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반응하려는 경향을 보이죠.
“사용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에 주목하라.” — 야콥 닐슨
사용성(Usability) 분야의 권위자 야콥 닐슨(Jacob Nielson)의 이 문장은 행동 설계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말'이 아닌 실제 행동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인데요.
이 원리는 마케팅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고객 세그먼트를 정의하고 메시지를 정교하게 설계해도, 실제 반응은 고객의 상황, 욕구, 편의성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어요. 제품 내부의 행동 설계와 외부의 메시지 설계 모두 결국 사용자의 '사용 논리'를 이해해야 성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사용자 반응이나 피드백에 따라 무조건 제품을 바꿔야 하는 걸까?”
✊🏻 목표는 고수하되, 방법은 유연하게
답은 ‘아니오’입니다.
제품을 만들다 보면 수많은 피드백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피드백을 그대로 수용하면, 오히려 제품의 방향성이 흐려지고 정체성을 잃을 수 있어요.
그래서 먼저 피드백이 ‘목표’에 관한 것인지, ‘수단’에 관한 것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목표: 제품이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문제 (예) 글쓰기 습관을 만들고, 실력을 동시에 향상시키는 것
수단: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설계한 기능, UX, 정책 (예) 300자/1000자 모드, 황금열쇠, 피드백 UI 등
사실, 대부분의 사용자 피드백은 '수단'에 대한 의견이에요.
예를 들어, “1000자 모드가 부담스럽다”, “황금열쇠가 쓸모없다” 같은 의견은 목표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의미죠. 이런 경우에는 얼마든지 유연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사용자의 피드백을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 대응했습니다.
단기 불편: 즉시 개선 가능하고 목표에 영향 없음 → 빠른 수정
행동 패턴 변화: 설계 의도와 다른 사용 방식이 지속 → 원인 분석 후 필요 시 수정
핵심 가정 위협: 목표 달성 구조가 무너질 가능성 → 전면 재검토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언제 목표를 고수하고, 언제 유연해져야 할까요?
이렇게 나름의 기준을 세워봤어요.
✅ 목표를 고수해야하는 순간
변경이 제품의 본질적인 목표를 훼손할 때
소수의 불만이 다수의 경험을 악화시킬 때
불편하더라도 장기적 가치에 직결되는 핵심 기능일 때
✅ 유연해져야 하는 순간
다수가 의도와 다르게 사용하지만 그 방식이 목표 달성에도 유효할 때
작은 수정으로 참여율·만족도가 크게 개선될 수 있을 때
데이터로 명확한 문제가 확인될 때
마지막으로, 변경을 결정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해봅니다.
이 변경이 목표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가?
제품의 본질을 흔들지 않는가?
사용자의 불편이 일시적 학습 곡선인가, 근본적 설계 문제인가?
이런 과정을 통해 무조건적인 수용과 무모한 고집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 균형을 잘 찾을 때, 제품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서비스 기획의 핵심, 관찰과 수정의 반복
건축가가 완공 후에도 현장을 찾아가 사람들이 건물을 어떻게 쓰는지 직접 확인하듯, 빌더에게도 출시는 끝이 아닌 진짜 시작입니다.
제품을 시장에 내놓은 그 순간부터 부지런히 고객을 만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요.
저 역시 처음에는 이 과정이 '사용성 개선'이라는 분야의 업무인 줄도 몰랐어요. 제품을 만들며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수정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며 배웠죠. 돌이켜보니 이 과정이야 말로 제품과 저를 동시에 성장시킨 가장 빠른 길이었던 것 같아요.
'관찰 → 설계 → 테스트 → 수정'을 무한 반복하는 과정.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설계 의도와 실제 사용자 행동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고객이 사랑하는 제품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