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성과를 돌아보고 다음 해의 계획을 세우는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얼마 전 회사에서 연간 성과 보고를 했습니다. 이 때 정리한 개선점을 바탕으로 내년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매번 겪는 과정임에도 내 일의 가치를 증명하는 건 녹록치 않다고 느껴요. 이번 블로그는 ‘측정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하반기 내내 제 머리 속을 계속 맴돌던 주제 중 하나입니다.
하나의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제가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한거 같습니다. 다양한 관점 중 하나로서, 제가 경험을 통해 느끼고 배운 점을 구독자님께 공유합니다. (참고로 이번 글은 꽤 긴 편이에요🥰)
마케터, 우리는 증명하는 자
다음 분기나 연도의 예산은 이전 마케팅 활동의 결과를 참고하여 정합니다. 해가 지날수록 마케팅 성과를 증명하는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B2B나 고관여 B2C 제품은 구매에 이르기까지 여러 채널에 걸쳐 긴 시간동안 상호작용이 이뤄져요. B2C의 경우, 앱과 웹을 넘나드는 복잡한 구매 여정을 쉽게 볼 수 있구요. 이런 특성 때문에 GA4처럼 쿠키 기반 분석 툴은 기여도 확인에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로그인을 통해 개별 사용자를 식별하기 이전의 유입 경로 분석이 특히 더 어렵죠!)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기여도 분석(어트리뷰션) 툴을 사용하거나 직접 유입 기여 분석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합니다. *B2B SaaS의 경우, 구매까지 평균 3개월에서 길게는 12개월이 넘게 소요됩니다. **국내에 알려진 어트리뷰션 툴은 믹스패널, 앱스플라이어, 앰플리튜드 등이 있어요. 아쉽게도 저희 회사는 기여도 툴을 따로 사용하고 있지 않고, 맞춤 분석 시스템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케팅 캠페인의 기여도를 매우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이해하고 있는데요. 어쩔 수 없이 ‘신규 고객 매출’과 몇가지 퍼널별 하위 지표만으로 모든 캠페인과 채널의 ROI를 판단하고 있어요. 이런 이유 때문에 예상했던대로 올해 진행했던 일들 중, 효과를 증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를들어, 특정 기업 목록을 타겟팅하는 링크드인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가정해볼게요. 퍼널 상단 KPI (인지도/상호작용) 목표를 세웠구요. 노출과 클릭을 통해 타겟 기업의 잠재고객이 사이트로 유입되고 콘텐츠도 소비했습니다.
하지만 이 중 몇 퍼센트가 추후 리드나 계약으로 이어지는지를 증명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기술(툴)의 도움없이는 이 채널이 장기적으로 비즈니스 KPI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가설을 확인하기 어려웠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장기적 브랜드 성장을 위해 충분히 의미있는 활동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숫자로 결과를 증명할 수 없는 일을 지속하는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매번 ‘증명해야하는’ 상황에 놓이다보면 자연스럽게 근시안적인 관점을 갖게 되기도 해요. ‘당장 성과로 이어지는 일’, ‘증명하기 쉬운 일’, ‘예산 받기 쉬운 일’을 택하는 쪽으로 말입니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하라
지난 20년(1996~2016년)은 우리가 디지털에서 하는 거의 모든 활동을 추적할 수 있었어요. 웹사이트에 추가한 링크부터 광고, 이메일, 소셜 포스팅까지. 데이터 수집과 측정이 쉬워졌습니다. 모든 게 측정 가능해지면서 TV나 라디오 광고, 매장 프로모션, 옥외광고 등 이전에 측정이 힘들었던 전통 매체가 지고, 새러운 디지털 매체와 함께 퍼포먼스마케팅이 급부상했죠. 아쉽게도 이 ‘측정의 황금기’는 저물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크게 두가지 변화 때문입니다.
클릭 없이도 사용자가 다양한 채널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제로 클릭’ 트렌드
개인정보보호법 강화에 따른 매체의 변화
마케팅 채널에는 비교적 측정이 쉬운 채널도 있고 그렇지 않은 활동들도 있습니다. 이미 아시는 것처럼 검색 광고, 소셜 광고, 디스플레이 광고와 같은 ‘유료 매체’는 ROAS를 추적하기 쉽죠. *ROAS(Return On Ad Spend): 광고 비용 대비 수익 반면, SEO, 콘텐츠 마케팅, PR, 이벤트, 커뮤니티 등은 상대적으로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어려운 편입니다. 여기에 이메일, 메시징 앱, 문자같은 비공개 채널이나 경로를 알 수 없는 채널(입소문)로 이뤄지는 마케팅 역시 수치화 할 수 없습니다. (이를 다크 소셜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효과를 정량화 하기 어려운 활동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는데요. 대기업과 비교하여 투입한 자원 (시간, 인력, 예산) 대비 얻는 수익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 감수해야하는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일거에요.
더욱 어려워지는 측정 환경
마케팅과 광고에 있어 데이터 측정은 항상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개인보호정책이 강화되며 새로운 도전과제를 당면하고 있는데요. 구글이 2019년에 발표한 3자 쿠키의 지원 중단이 이러한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실제로 2024년부터 순차적으로 지원 중단을 실행(영문 기사)한다고 합니다. 또한 메타나 구글 같은 플랫폼들은 이제 더이상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1자 쿠키의 저장 기간도 줄어들어드는 추세입니다. 사파리 브라우저는 7일, 크롬과 파이어폭스는 30일간만 쿠키를 저장합니다. 이로인해 기여 분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1자 데이터의 활용에도 큰 제약이 생겼습니다. (저장 기간이 짧아져 전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에 특정 채널이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어려워졌어요.) GA4는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최근 기여도 측정 모델 관련 변경 사항을 발표(영문 기사)습니다. 일부 *규칙 기반 모델이 사라지고, 이제 라스트 클릭 혹은 **데이터 기반 모델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의사결정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마케팅 채널 및 캠페인의 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제는 변화하는 측정 환경에 맞게 마케팅 전략을 다시 세우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아닐까요? *규칙 기반 모델: 사용자가 전환까지 거쳐온 전체 경로를 바탕으로 각 채널의 기여도를 계산하는 방식 **데이터 기반 모델: 개별 전환의 기여도를 할당하는 대신, 각 채널이 특정 상황에서의 전환 가능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계산하는 방식 (각 전환의 개별 경로를 모두 알지 못해도, 전환에 미치는 각 채널의 영향력 평가)
끝이 보이는 게임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지표는 대부분 퍼널 하단의 ‘전환’ 단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콘텐츠 클릭, 웹사이트 방문, 회원가입, 양식 제출, 구매 등등. 이렇게 측정 가능한 활동(퍼널 하단)에만 초점을 맞추면 어떻게 될까요? 즉각적 수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이미지와 포지셔닝을 강화하는데 기여하는 활동은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전략은 지금 당장은 괜찮을지라도 언젠가 퍼널 하단에도 그 영향이 미치게 되어있어요. 브랜드 인지도를 개선하고, 제품의 메시징을 다듬고, 오가닉 콘텐츠를 개발하고, 커뮤니티로 신뢰를 쌓는 일 등등. 브랜드를 만드는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투자없이는 장기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KPI와 목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비즈니스의 성패가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측정할 수 없는 것’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오해하고, 근시적인 시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측정하기 어려우니 그저 직감과 믿음만으로 마케팅을 해야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럼 측정하기 어려운 마케팅 활동은 어떻게 효과를 확인해야할까요?
기여도, 어떻게 확인해야할까?
여전히 ‘개별 채널’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는 충분합니다. 그래서 *단일 채널을 운영하는 마케터나 퍼포먼스마케터라면 각 매체의 ROAS 측정이 비교적 수월할텐데요. *단일 채널 운영자시라면 이번 기회를 통해 웹사이트 트래픽, 전환, 그리고 구매 데이터 등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데이터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시길 추천해요. 여러 채널의 기여도를 이해해야 하는 올라운더 마케터라면, 따로 1) *MTA(Multi-Touch Attribution) 혹은 **MMM(Marketing Mix Modeling) 툴을 도입하거나, 2) 맞춤 시스템 구축이 필요합니다. **MTA(멀티터치 기여도): 소비자의 구매 결정 과정에 있어 다양한 마케팅 접점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하는 방법 ***MMM(마케팅 믹스 모델링): 기업의 마케팅 활동과 판매 성과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통계적 방법론. 여러 마케팅 요소가 전체 판매량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각 요소의 기여도를 파악. 네, 맞습니다. 두가지 모두 비용이 들거나 내부 인력이 필요한데요. 만약 이런 방법을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아래 소개해드릴 프레임워크로 마케팅 퍼널의 전반적인 상승도(Lift)을 추정해보세요!
퍼널 상단(인지) 잠재고객이 팟캐스트에서 우리 브랜드 이름을 들었거나, 지나가면서 매장을 봤거나, 지인에게 추천을 받는 등 다양한 경로로 우리 브랜드를 알게 되는 단계입니다. 자연스럽게 구글, 유튜브, SNS 등에서 브랜드를 검색해보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SNS의 ‘신규’ 팔로워 수나 계정 노출 수 역시 이 인지 단계의 행동으로 볼 수 있어요. 퍼널 중간(고려) 웹사이트 트래픽은 대부분 1) 직접 유입 (다이렉트) 혹은 2) 브랜드 키워드 검색을 통해 유입됩니다 (GA4와 구글 서치 콘솔로 추적 가능). 이 퍼널 중간 단계에는 뉴스레터 구독자, SNS 팔로워 등 다양한 채널에서의 ‘구독자’를 포함합니다. 퍼널 하단(전환) 회원가입, 양식 제출, 무료 체험, 구매 등 사이트 방문 후 발생하는 전환 행동에 해당됩니다. 이 구분을 활용하여 아래와 같이 매월 추이를 관찰해보세요. 그리고 퍼널 상단/중간 단계에 해당되는 활동 중에 잠재력이 높아보이는 몇가지를 선택합니다 (예: 커뮤니티 활성화). 이후 몇달간 집중적으로 그 활동에 자원을 투자해보며, 무엇이 얼만큼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며 그 효과를 짐작해 보는건데요. (예) 대형 언론사에 보도자료 송출 후 전환율이 X% 이상 증가, 팟캐스트 광고 후 직접 검색 및 브랜드 검색 트래픽이 X% 증가 물론 이 방법이 앞서 말씀드린 기여도 측정 방식을 완벽히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측정하기 어려운 채널이나 활동이 전체 마케팅 성과 향상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큰 도움이 될거에요.
새로운 환경, 새로운 마인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가 제한되고, 그 퀄리티가 낮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저는 이제 ‘측정할 수 없으면 하지마라’는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닐까 싶어요. 이 글을 마무리하며 점점 어려워지는 데이터 측정 환경에서 데이터를 더욱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몇가지 제안해봅니다. 1) '왜(가설)'에 근거하여 테스트해보기: 왜 특정 마케팅 활동이나 방식이 더 효과가 좋을지 가설을 세워보세요. 그리고 이를 직접 테스트하며 가설이 맞는지 틀린지를 증명해봅시다. 분명 이 과정에서 훨씬 많은 인사이트를 보다 빠르게 얻게 될거에요. 마케터로서 여러분의 직관과 데이터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2) 인터뷰/설문 조사로 정성 데이터 수집하기: 이 과정을 통해 타겟 고객을 더 깊게 이해하고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거에요. 이를 바탕으로 1번과 연계하여 마케팅 캠페인에 반영하고 테스트 해보시길 추천해요. 3) ‘확실한’ 데이터는 없음을 인정하기: 모든 데이터가 완벽하게 정확하거나 확실치 않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데이터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직관과 경험을 더 활용할 수 있게 될거에요. 그럼 전통적인 데이터 소스 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보조 데이터를 창의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늘어날거에요. (예) 이벤트 효과 측정에 ’신규 고객 유치 수‘와 함께 SNS에 브랜드 언급 횟수와 반응 확인 제가 좋아하는 B2B 마케팅 인플루언서이자 창업가 Chris Walker의 구절을 인용하며 마무리 해봅니다. 마케터들은 대체로 가장 효과적인 것을 하는 대신 측정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 크리스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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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분기부터 구글이 1%에 해당하는 서드 파티 쿠키를 중단(영문 기사)한다고 합니다. (진짜로요!) 앞으로 순차적으로 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 같네요.
마케터는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를 올바르게 정의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도서 ‘위기를 기회로 바꿔주는 생각의 도구’가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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